내삶의 작은얘기들

남편없는 휴일 혼자놀기

캠퍼5 2009. 4. 23. 18:41

 

날씨가 화창한 휴일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남편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일하러 나간단다. 다음주가 시험이어서 꼼짝없이 공부를 해야하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예의상 아쉬움을 표현한다.

결혼 11년차,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아쉬운 아내의 입장에서 보다라도 오늘은 일하러 나가는 남편이 조금 얄밉다.

아! 날씨가 아깝다. 오늘 뭐하지? 잠깐 고민하다 집안분위기를 조금 바꿔보기로 한다.

먼저 침실위의 밸런스를 노랗게 바꿔주고

  

 

현관 앞에도 영원히 시들지 않는(!) 노란 프리지아와 보라색 라벤더 꽃을 화병에 꽃아본다.

  

 

 

식탁보는 꽃무늬가 그려진 오렌지 색으로..

 

 

 

 

콘솔위에는 도자기의 고장, 이천에 사는 사람답게

예전에 지인들에게 선물받은 다기를 놓아본다.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가정주부답게 빨래를 한다. 빨래를 하고 나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내친김에 집안에 피어있는 꽃사진도 몇  장 찍어본다.

물을 안 주는 게으른 주인 밑에서도 꿋꿋이 잘 살아주는 기특한 놈들이다.

게다가 봄마다 꽃도 피워주고

 

 

              

 

4년전에 산 자스민이 올해도 꽃을 피웠다.

보라색 꽃봉오리를 피워서는 몇 일간 버티다가 하얀꽃으로 사위어 간다.

침실 머리맡에 두었더니 향기가 라일락 못지 않다. 아침마다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침실 앞 베란다.

어릴적 엄마가 온 집안을 화분과 나무들로 가꾸셨던 기억이 내 유년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 같아

나도 아이들을 위해 화분 몇 개를 키운다.

그리고 죽으면 조화로 땜질한다.

 

 

 

엄마의 성화를 못이겨 아이들은 마지못해 벼락치기를 해준다.

학교다닐때 벼락치기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던 나는 매우 흡족해 하며 당근 하나를 던져준다.

"오늘 엄마가 점심때 뭐 해줄까?"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내가 이렇듯 대담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단순한 우리 아이들의 식성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나 삼겹살 아니면 스파게티란다.

삼겹살이 더 쉽긴 하지만 오늘은 공부를 하니까 인심써서 스파게티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재료 준비에 들어간다.

먼저 새우를 다듬는다.

 

 

 

 

 

그리고 양송이와 양파를 잘게 썰고

코스트코에서 사온 관자를 해동한다.

 

 

 

 

 

손질한 새우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주고

 

 

 

 

잘게 썬 야채를 볶는다.

아! 이것만으로도 맛있는 냄새가

 

 

 

그래도 홈메이드 스파게티니까 월계수잎과  허브를 좀 더 넣어주기로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소스는  산다. 사는게 제일 간편하다.

만들줄 모르기 때문이다.

 

 

 

끓는 물에 모든 재료를 넣고 끓인다. 그리고 소스를 넣어 살짝 졸인다.

 

 

 

그러는 동시에 스파게티를 삶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파게티를 삶던 해에'라는 수필이 생각난다.

소스 냄새 때문에 벌써 침이 고인다.

 

 

 

이제 완성. 뿌듯하다. 모처럼 아이들에게 요리(?)를 해준것 같아서. 

 직장 다니는 엄마를 둔 아이들에겐 이정도도 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