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보았다.
보고나서의 첫 소감을 20자 이내로 말하라면
'한 번 더 봐야겠다.'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영화였다.
일단 박찬욱 표 영화답게 미술과 음악이 돋보였다.
강렬한 색의 대비, 연극의 무대를 연상시키는 조명과 세트의 구성,
간혹 귀에 거슬린 듯 하지만 묘하게 화면에 녹아드는 뽕짝의 배경음악 등은
그의 작가주의 스타일에 여전히 일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다소 당혹스러움과 대락 난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는 개봉전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으며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듯이
드라큐라를 소재로한 치정 멜로물도 아니었고 공포물과는 더 더욱 거리가 멀었다.
그것의 정사씬은 배우들의 노출수위에 비해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았으며 드라큐라가 등장하여
피를 빨아 먹는 장면은 공포스럽기는 커녕 오히려 희극적이기까지 했다.
단지 푸른빛이 돌정도로 창백한 배우들의 피부색과 대비된 피의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하여
때론 미적지근한 피비린내가 훅 풍기는 듯한 그런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 영화를 보러간 대부분의 관객의 예상이나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 정적인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전 배우들의 호연으로 주목받았던 '다우트'를 떠올렸다.
신앙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과 태도가 다른 두 사제의 심리적 갈등을 밀도있게 연출하면서 동시에
그 갈등을 불러일으킨 인간 심리의 본질에 대해 깊이있는 탐구와 성찰을 하려고 시도한 수작이었다.
어쩌면 '박쥐'는 이런 류의 영화와 같은 선상에 위치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것의 영문제목이 말해 주듯이.
박쥐의 영문제목은 '배트'가 아니라 '갈증'이다.
그러나 해소되지 않는 갈증, 부조리한 갈증
부조리한 존재 조건, 부조리한 캐릭터, 부조리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실로 오랜만에 대학교때 배웠던
철학적 개념을 다시 상기하게 된 2시간이었다.
그러니 이 영화를 한 번 보고 뭐라 말한다는 것은 나에겐 역부족인것 같다.
비록 재탕을 끔찍하게 싫어한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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