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인데도 남해는 봄기운이 느껴진다.
남해의 해안도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다랭이논들은 푸른 빛을 발하고 있다.
겨울초, 시금치, 남해를 대표하는 작물인 마늘이 겨울을 잊어 버린 봄의 전령사인 마냥 여행자를 혼동케 한다.
겨울이어도 겨울이 아닌, 아직은 옷깃을 여미는 찬바람이 있음에도 따스한 햇살과 푸른 생명들은 이미 봄을 예고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도 해안도로 따라 남해섬을 달리고 있다. 봄바람을 하메 기다리며 남해섬 팔백리 중 절반을 온 셈이다.
두모마을에서 30분이면 족한데 해안 풍광에 빠져 여섯 시간이 걸려 온 곳이 가천다랭이마을이다.
이미 해는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산그늘이 서서히 벼랑 끝 마을을 덮으려고 하였다.
'남해똥배'란 말이 있다. 척박한 섬에 농사에 쓸 마땅한 거름이 없어 남해사람들은 멀리 여수까지 배를 타고 가서 똥을 거두어 배에 싣고 왔다.
똥배는 화학비료가 나오고 난 뒤에는 없어졌지만, 이런 억척스러움이 척박한 남해의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 농업이 발달한 섬으로 만들었다.
벼랑 끝의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버리지 않고 일구어 온 그들의 끈기야말로 오늘의 남해를 있게 한 것이다.
가천마을에서 제일 먼저 초등학교로 갔다. 섬여행을 다니다 보면 빠지지 않고 꼭 들리는 곳이 초등학교이다.
대부분 폐교가 되어 쓸쓸함 만이 감돌고 있음에도, 이상하게도 발길이 절로 간다.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삐거덕거리는 복도를 걸어 보고
먼지 수북한 의자에도 앉아 보기도 하고 칠판에 손가락으로 글씨도 적어 본다. 교단에 서서 짐짓 보이지 않는 학생들에게 호통도 쳐 본다.
아무도 찾지 않은 폐교가 서러운지 낡은 창살 아래 동백꽃이 붉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학교를 나오니 마을 주민 한 분이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먼저 건넨다. 얼떨결에 여행자도 인사를 한다.
초등학교에서 바로 마을로 돌아서는 여행자를 보고 마을 분은 '기봉이집'에 가 봤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 떠돌아 다닌다고 영화 본지도 오래 되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기봉이집'이 풍광이 좋다고 하며 꼭 가보라고 한다. 아울러 가천 마을을 잘 볼 수 있는 지점도 설명하신다.
다행히 여행자의 눈썰미와 같아서 다시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낡은 쓰레트 지붕을 이고 있는 '기봉이집'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가히 이 곳의 풍경은 으뜸이었다.
외딴 섬인 소치도와 낡은 쓰레트집이 스산한 분위기를 절묘하게 연출하고 있었다.
먼지 쌓인 마루에 걸터 앉아 바다와 섬, 설흘산, 해안절벽, 다랭이논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 보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뭔가를 담은 포대를 지게에 지고 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여행자가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할아버지 그게 뭡니까?",
"겨울초" , 대답은 간단한데,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였다. 할아버지에게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자 선뜻 그러마 하고
제자리에 멈추어서 포즈를 취하신다. 어색하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말고 그냥 평소대로 걸어 오시라고 주문하였다. 자연스런 걸음이 이어지자 샷을 눌렀다.
연세가 든 지금도 잘 생긴 할아버지를 보니 젊은 시절 이웃동네 처녀들 마음깨나 흔들어 놓았을 것 같다.
막걸리 한 잔 대접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여 어쩔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옛날 마을의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 보니 논 한배미기가 없더란다.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집에 갈려고 삿갓을 드니 그 밑에 논 한배미가 있더란다.
논을 갈던 소도 한 눈을 팔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가천마을의 다랭이논은 봄으로 착각이 들만큼 온통 푸르다. 마늘을 비롯하여, 겨울초, 상추, 시금치
수확이 한참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심은 시금치와 겨울초를 지금 수확하는 것이다. 이 곳의 채소는 무공해 친환경농작물이다.
특히 시금치는 하우스에서 재배하여 매끈한 것이 아니라 잎이 오돌토돌하여 보기에는 못생겼어도 달고 맛은 훨씬 뛰어나다.
마을 중간쯤 암수바위 인근에 판매처가 있다. 한 봉지에 2,000원인데 뭐가 남을까 싶다. 농부의 아들인 여행자는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다.
무턱대고 시금치 한 봉지, 겨울초 한 봉지를 샀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였다.
설흘산을 배경으로 하늘을 찌를듯한 이 호기, 약간은 쑥스럽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아이를 잘 낳아 자손들이 번영하지 않겠는가
원래는 수미륵과 암미륵으로 불리운다. 수미륵은 발기한 남성의 성기 모양이고 암미륵은 아랫배가 불룩한 임산부를 닮았다.
이 미륵돌에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조선 영조 때 이 고을 현령인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현령이 관원들을 모아 가천에 와서 노인이 가르쳐준 자리를 파보니
암수바위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10월 23일 이곳에 모여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미륵제를 지낸다고 한다.
암수바위 오기 전 마을 중앙에는 '밥무덤'이 있다. 일종의 서낭당이라 할 수 있다. 해마다 음력 10월 보름날 밤 8시경 마을주민들이 모여
풍농과 마을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고 제사를 지낸 밥을 한지에 싸서 밥무덤에 묻어둔다고 한다.
암수바위에서 내려가면 바닷가에 닿는다. 지금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파도가 거세고 암초로 이루어져 있어 배 한 척 대기도 힘들다.
여기에 서면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비는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얼마나 극진했던가를 느낄 수 있다.
산비탈의 땅 한 줌이라도 억척스러움으로 농토로 바꾸어 가천마을의 살림을 풍족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의지가 드러난다.
사실 가천마을도 이번이 네번째이다.
외딴 섬과 암자를 제외하고 한반도 남단은 대개 수 번 많게는 수십번을 여행자는 다녀 왔다. 몇 번을 가도 그 때 그 때의 느낌이 다른 게 여행지의 모습이다.
남해의 독특한 풍광이 가장 잘 두드러진 곳 , 가천다랭이마을. 오늘 여행은 가천 마을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포인트를 찾는 것이었다.
관광객들은 대개 주차장에 내려서 계단을 거쳐 해변까지 내려간다. 이 길은 편리하지만 가천마을의 진면목을 보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앵강만을 거쳐 온 1024번 지방도가 가천마을 고갯길을 넘자마자 첫번째 관망포인트가 나타난다. 여기에서 난 논길로 들어서면 가천마을을 한 눈에 볼 수있다.
다시 주차장을 지나면 마을로 들어가는 자동차길이 나온다. 이 언덕의 돌의자 주위에서 보면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마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나머지 한 곳인 "맨발의 기봉이집"에서 바라보는 맛도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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