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도 끝자락이 보이고 가을이 목전에 성큼 다가 오고 있음을 알았을 때
문득 참으로 오랫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바닷가를 싸돌아 다니고도 또 '섬타령'이냐는 미리내의 곱지많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섬마을에서 겪게 되는 '극한 경험'이 일상 생활 '권태의 두터운 껍질'을 딱지로 벗겨 버리고
부드럽고 뽀송한 새 살로, 다가오는 가을을 맞을 수 있음을 알기에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 탓에 정작 가보고 싶었던 '그 곳'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그 섬을 향해 무작정 길을 나서 봅니다.
(F11을 누르고, 볼륨을 높여 '일상의 탈출구' 섬마을로 이어주는 연락선에 함께 오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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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고속도로를 달리다 '섬마을 토영'을 가기로 마음먹고
중리, 고성을 거쳐 통영항에 다다릅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통영을 토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후 시간 섬마을로 들어가는 배들도 마지막에 가까워 질 무렵, 연화도로 향하는 막배에 몸을 싣어 봅니다.
'참 나'를 찾아 돌아 오겠다는(*^^*) 어줍잖은 말을 남기고 떠난 발걸음이지만
집을 나선 순간.... 이미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낡은 차도선의 오래된 소화전도 낯설지 않고
함께 같은 길을 향하는 많은 발걸음들도
뱃전을 일렁이며 들이치는 파도와도 이미 동행이 되었습니다.
씨암닭 만들어 손주들 용돈이라도 댈 요량일까요?
섬마을로 살러 가는 중병아리들 조차 정겹게 느껴집니다.
뭍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연화 분교장'의 아이들은
또다시 섬마을 선생님 손을 잡고 손바닥만한 운동장을 누빌 생각에 신이라도 난겐지
차도선이 채 도착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내릴 차비를 갖춥니다.
연화도의 조그마한 항구를 뒤로하고 산기슭에 자리잡은 '연화사'
아담한 기도 도량에도 마지막 여름이 익어 갑니다.
사명대사와 세 여인의 일화가 전해져 오는 '연화사'
그 이름처럼 소담스럽게 핀 연과 수련, 그리고 능소화가 반기는 그 곳
연화사를 뒤로 하고 까꼬막을 따라 오르면
멋들어진 용바우를 볼 수 있는 '보덕암'이 자리합니다.
마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으련만
용바위 일대의 조망이 좋다는 장군바위를 올라봅니다.
가뿐 숨 몰아 쉬며 장군바위에 오르니
몸을 날릴듯이 불어오는 바람과 천길 낭떠러지에 오금이 저려 오지만
바위 끝에 걸터 앉아 맥주 한잔하며 바라보는 토영 먼바다의 풍광에 시간 가는줄을 모릅니다.
내친 김에 일몰까지 보고 내려가려 했으나
잔뜩 흐린 날씨에 무심하게도 어둠만이 나릴 뿐입니다.
바로 앞의 보덕암과 바다 건너 욕지에서 갈도에 이르기까지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어둠을 맞이하는 시간...
이 밤을 보낼 곳을 찾아 산길을 내려 옵니다.
보덕암 가는 언덕길, 오층 석탑 아래에 자리잡아 봅니다.
멀리 고기 잡이 배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바다 건너 소매물도의 등대 불빛이 한 번씩 돌아 비추는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이곳에서 하루 밤 쉬어 갑니다.
언덕 너머 연화 마을과 또 다른 섬마을의 불빛 만이 고이 비추는 이 곳에서
맥주 몇 모금 들이키며 나를 돌아 보는 시간
비로소 내가 섬이 되고, 섬과 내가 하나 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혼자'라는 시간과 뒤척이며 보낸 잠자리.
이른 새벽 동트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앉아 한참을 상념에 잠겨 봅니다.
돌이켜 보니, 지난 밤 나와 하나 되었던 것은
저멀리 매물도 등대섬의 불빛 만도, 수려한 용머리 해안의 실루엣 만도 아니었습니다.
바람... 세상의 끝에서 맞는듯한 칼바람.
"웅 웅" 불어 대며 나를 들어 깨워 금방이라도 검푸른 바다로 내동댕이칠 것만 같던 그 바람이었습니다.
그 바람이 있었기에 다시 맞는 일상의 새 아침, 잔잔한 풍경이 고맙게만 느껴집니다.
멋드러진 일출이라도 함께 하였다면 혼자만의 나들이가 덜 궁색했을텐데...
매일 맞는 아침처럼 그저 그렇게 날이 밝아 올 무렵
집에서도 잘 챙기지 않는 아침 밥상이지만
즉석밥 데워 외딴섬들을 반찬 삼아 고맙게 맞습니다.
일찌감치 자리를 접고 연화마을 포구로 내려와 첫 배를 기다리는 시간
터미널에 내려와 고양이 세수를 할지언정 어느 날보다 개운한 아침입니다.
연화와 우도를 뒤로 하고 '앎의 욕구'가 가득하다는 그 섬을 향합니다.
연화도에 비하면 욕지도는 그야 말로 '대처' 입니다.
바다 너머 연화의 용머리가 '엎어지면 코 닿을듯이' 보이는 욕지도
이곳 욕지 사람들의 생활도 연화에서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지는 않습니다.
욕지 특산 '고매'의 수확이 막 시작되고 있습니다.
(갓 캐낸 고구마를 한 상자 사들고 와 삶아 보았더니, 밤인지 고구마인지 구별이.....)
그렇게 땀 내음 나는 욕지의 구비진 길을 돌아
진한 갯내음에 취할 무렵
진정 '休'를 아는 가족을 만나 봅니다.
'여행은 잠과 같고 꿈과 같다'던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그림 같은 저 곳에서 잠시 몸을 뉘인 가족은 얼마나 많은 꿈을 얻어 돌아갈까요?
밀려오는 부러움을 뒤로 한채, 돌아갈 내 길에도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남은 일들이 많음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섬사람의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단아한 고샅길을 걸어 봅니다.
그 길 끝에서 외딴 집을 만납니다.
지금까지 굳게 믿고 자신 있게 다져오던 내 길은
나 혼자만의 '멋진 철옹성'은 아니었는지, 그곳을 통해 되돌아 봅니다.
다시 욕지를 찾을 기회가 된다면... 남겨둔 가족과 함께 하고 픈 장소에서
욕지의 한 나절 나들이길을 접어 봅니다.
어느새 섬내음이 짙게 배어 버려 늘어진 몸
피서 인파 끊긴 선창가 횟집에 들러 '자리돔 물회' 한 그릇으로 추스려 봅니다.
통영으로 향하는 배를 기다리며
회 접시를 두고 당기는 실랑이가 정겨울 무렵
내 '알고자 하는 욕망'도 부질 없음에 고이 접어 뭍으로 돌아 옵니다.
바다가 어디고, 섬인지 뭍인지 구별이 힘들어 질 즈음
아니 그 나눔이 부질없어 질 즈음
산양 일주로를 타며 정처없는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수많은 다도해의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는 '달아공원'도 몰라보게 달라 졌습니다.
남은 일정도, 특별히 오라는 곳도 없으므로
그냥 이곳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남해 토영 섬마을의 바빴던 하루를 붉게 물들이는
달아공원의 전망대에서
새로운 섬마을로 향할 내일을 기약하며
아름답게 저물어가는 '하루'를 배웅합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의 아름다운 풍경은
처음보는 이도 정겨운 '길동무'로 만들게 하나 봅니다.
멀리 서울서 혼자 여행을 오신 OO신문사의 이**기자와 함께
기꺼이 남은 일정을 동행하기로 합니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에서 어제와는 또 다른 밤이 그렇게 깊어만 갑니다.
새벽을 깨워 매물도로 향하는 첫 배를 탑니다.
그야말로 손바닥 만한 통통배에 몸을 맡기고
피곤한 여정이지만, 기억에 남을 추억 한자락 기대하며 섬을 찾는 여행자들
그 속에는 뭍에서 타 온 약봉지를 챙겨가며
또다시 고단한 섬생활을 준비하는 할머니도 보입니다.
여전히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외딴 섬
가파른 소매물도 동네 고샅길을 기어 올라 찾은 폐교터는
얼마전 드라마 '태양의 여자'에서 미카엘의 집으로 촬영된 곳입니다.
내처 섬의 정상, 망태봉으로 올라
바닷길이 열린 등대섬을 바라 봅니다.
등대 오르는 길도 말끔하게 나무 계단을 차려 입고 있지만
끝없이 펼쳐 지는 등대섬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아 봅니다.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인가 봅니다.
뱃시간 맞추어 활짝 열린 바닷길을 따라 올라본 등대섬은
그간 흐린 날씨처럼 막힌 가슴마저 시원하게 열어 버릴 수 있는
탁 틔인 조망과 함께
여기저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로
조용하던 섬이 활기가 넘쳐 납니다.
이 아름다운 등대섬에서 하루 비박이라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등대 아래 퍼질러 앉아 바다와 섬, 그리고 사람 구경을 하다
조금씩 닫혀가는 물길에 아쉬움 반 남겨 두고 건너 옵니다.
몇해 전 찾았을 때는 절벽을 타고 오르내리는 염소떼를 부러워하며
조심 조심 바윗길을 타고 다녔는데, 그 사이 이런 나무계단이 생겨 많은 이들이 오고 갑니다.
아무도 없는 우리만의 공간에서
아이들이 텀벙대며 뛰어 놀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가진 모퉁이의 그 곳, 추억어린 물가에서
이제는 사진찍기 놀이를 구경하며 옛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길동무의 손을 빌어 나도 어색한 사진 한 장 남기고
아쉬워 등대섬 한번 더 돌아 보고 내려 옵니다.
4년 전 겨우 사흘 민박에도 정이 들어, 떠나는 날 아쉬움이 묻어나는 주름진 손으로
손수 갈무리한 돌미역 등 속을 손주 같다던 아들녀석에게 꼬깃꼬깃 접은 만원짜리와 함께 쥐어 주시던...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던 인정 넘치는 '제주 할매'
다시 찾겠다는 그 '약속'을 지켜 찾았지만,
폐가로 남은 집과 함께 돌아 가신지 3년이나 되었다는 소식에 마음 한 켠이 아려 옵니다.
그런 할매들의 빈자리는 서울사람들의 번듯한 펜션들로 채워져서
착찹한 마음만 더해만 가는 소매물도를 도망치듯 빠져 나옵니다.
돌아 오는 길, 통영항의 언덕배기 작은 마을 '동피랑'을 찾아 봅니다.
구호도 거창한 '경제 발전'라는 이름 하에 개발과 철거라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지금
한가로운 굉이 가족만이 뒹굴거리는 이 곳 동피랑에서
공존과 평화의 가능성을 엿 봅니다.
그 곳에는 아직 꿈 한자락 남아 있었습니다.
동피랑 아래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앙시장 골목을 찾아 들어
멍게 비빔밥과 생선구이로 기억에 남을 섬마을 '동행'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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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으면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마치 술에 취한 듯 하루하루 바쁜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사는 오늘
잠을 자고 꿈을 꾸며 우리의 뇌가 휴식을 취하듯
현대 생활에 지친 우리는 그런 휴식을 갈망하며 하루 하루 살고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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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자유를 찾아 떠난 섬마을 나들이
여린 빛내림처럼 어렴풋이 길이 보일 것도 같았던,
혼자만의 이번 나들이에서는
뜻하지 않은 '길동무'가 함께 하여 내딛는 발걸음 한결 가벼웠습니다.
그 곳에는 여전히 힘겨운 삶이 함께 하고 있겠지만
어느 날, 다시 그곳을 향해 길을 나서는 나를 발견할 겝니다.
'아! 지금이 너무 편하다.
나 참 잘나간다 싶을 때, 바로 그 때!'
자리를 박차고 훌쩍 떠나는
* 소설가 성석제님의 글에서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는 그 곳으로,
오래 전, 이제는 빛이 바래 버린 '약속' 묻어 둔 그 곳으로.....
2008.8.25-27
통영 섬마을(연화, 욕지, 매물)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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