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지

[스크랩] 멋스럽게 늙은 봉정사와 가을 안동 여행

캠퍼5 2007. 12. 12. 17:58

동쪽이 평온한 땅, 안동

장쾌한 부석사를 뒤로 하고 봉정사로 향했다.

 

멋스러움이란 무엇인가?
곱게 늙는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사람이든 집이든 그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상반된 이 물음은 봉정사에 가서야 풀리었다.

'멋스럽고 곱게 늙어 가는 절' 그것이 바로 봉정사였다.

 

봉정사 가는 길은 여느 산사 초입의 깊은 숲을 지나지도 않았으며, 부석사처럼 호방한 길도 아니었다.

흔한 가을 들판을 지나자 동네 뒷산 같은 나즈막한 산이 앞에 나타날 뿐이었다.

제 멋대로 생긴 소나무와 깊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듯 조금은 숨 가프게 하는 오르막길이 전부였다.

 

일주문을 지나자 가을 낙엽이 일행을 맞이하였다.

이윽고 평탄한 길,

붉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와 한껏 물오른 단풍들 사이로 박자를 놓쳐 혼자 푸른 소나무들....절로 오르는 사람들...

한 폭의 가을 그림이었다.

아, 이게 봉정사였구나.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 명명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보물 제55인 대웅전,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께서 다녀가기도 한 아름다운 사찰이다.(봉정사 홈페이지) 

 

# 만세루(덕휘루)와 소나무

절에 가면 만세루를 흔히 볼 수 있다. 누문은 보통 2층으로 건축된다. 윗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목어(木魚), 운판(雲版), 범종(梵鐘), 법고(法鼓)등을 걸 수 있는 종루(鐘樓)나 고루(鼓樓)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아래층은 사찰의 통로 기능을 한다.

봉정사의 만세루는 누각 안에 ‘덕휘루(德輝樓)’라는 또 하나의 당호(堂號)를 달고 있다.

 

 

 

 

# 극락전

 현존하는 우리 나라의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건물이다. 

 

 

 

봉정사에서 보지 않으면 후회하는 곳이 있다.

대웅전 옆 돌계단을 오르면 있는 영산암이 그 곳이다. 옛스러운 봉정사를 더욱 멋스럽게 하는 곳이 바로 영산암이다.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우화루 밑의 통로도 그러하지만,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여백의 미를 한껏 살린 마당, 층계를 놓아 생긴 그대로 나뉜 두개의 작은 마당, 바깥의 자연을 안으로 자연스레 끌어당긴 우화루의 누마루, 누구나 편안히 걸터앉을 수 있는 툇마루,

어디 하나 빼 놓을 것이 없는 곳이 바로 영산암이다.

 

영산암을 잘 표현한 글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잘 알려진 유홍준씨의 글이 있다. 유흥준씨는 이 책 3권에서 봉정사 영산암 마당의 멋스러움을 건축가 승효상이 『내 마음 속의 문화유산 셋』이라는 문화칼럼에 연재한 기사를 인용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여 있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 이 마당은 서양인들이 집과 대립적 요소로 사용한 정원과도 다르며 관상의 대상으로 이용되는 일본의 정원과도 차원을 달리하는 우리의 고유한 건축 언어이며 귀중한 정신적 문화 유산인 것이다.

"또한 그는 봉정사가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세 개의 마당 즉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의 감정 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을 통하여 한옥의 멋스러움을 마당을 통하여 느끼게 해 준다.

 

 

아담한 암자와 잘 어울리는 앙증맞은 아이

 

 

 

극락전 옆을 돌아가면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안동 하회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다 왼쪽으로 난 비포장길을 택하면 병사서원 가는 길이다.

모든 비포장길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긴장을 하게 된다.

그러한 긴장도 잠시 넓디 넓은 풍산들을 바라보며 굽이굽이 이어지는 한적한 길을 따라 가노라면 새삼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세상의 일들을 잊어 버리게 된다.

비탈길이 정점에 다다르면 낙동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고 강변 늪에는 쭉쭉 뻗어 있는 미류나무 군락이 길손을 맞이한다.

 

병풍같이 산이 강을 둘러 싸고 그 아래로 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흰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곳에

병산서원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고즈넉히 앉아 있다.

사실 병산서원을 가면 서원 자체의 아름다움도 빼어나지만 낙동강과 어우러진 주위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 복례문(復禮門)

병산서원을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다.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라'라는 뜻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따왔다고 한다.

 

 

# 만대루

병풍같은 앞산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만대루는 병산서원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만대루(晩對樓)의 만대는 두보의 시<백제성루>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翠屛宜晩對)" 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 서원 옆의 뒷간

머슴용 화장실이라고 하는데, 그 생김새가 소박하고 재미있다.

 

 

 # 고운사 일주문

가을 단풍이 너무나 아름다운 절이었다.

시월말이나 11월초에 꼭 한 번 다녀가시기를...

 

 

 

# 소호헌

이전에는 사랑채 누마루 앞으로 낙동강을 바라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국도 4차선이 앞을 막고 있어 답답합을 준다.

서해(徐懈) 선생이 서재로 쓰기 위해 명종(재위 1545∼1567) 때 지은 별당이다. (경북 의성)

 

 

 

# 안동 권씨 재사

 

 

# 위 여행 사진은 2004년 11월 초에 여행한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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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천령의 바람흔적
글쓴이 : 김천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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